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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이직 후기

대략 6개월간의 휴식을 마치고 지난 12월 1일부터 새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쉬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 동안 마음편히 글을 쓰지 못한 탓에 지금이라도 간략하게 회고를 해보려 한다.

일단 첫 번째로 느꼈던 점은, 일을 하지 않으면서 쉬는 것은 그리 즐겁지 않다는 것이다.

대학 졸업 후 일을 시작한 순간부터 어느덧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는데 그 동안 1개월 넘게 쉬었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 퇴사 후 정말 오랜만의 방학을 얻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순진한 생각이었다.

학생 때의 방학은 학업이라는 할 일이 있는 상태에서 가졌던 휴식이었는데, 앞으로 할 일이 있는 상태에서 쉬는 것과 할 일 없이 쉬는 것은 정-말 다르다. 6개월 동안 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서 생각을 다시 하는 기회를 얻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외여행을 간다거나 정말로 여유로운 마음의 휴식을 얻지는 못했다.

이직 준비를 해야만 한다는 부담 한 덩이와 (실업급여는 있지만 어쨌든) 버는 것 없이 소비만 하고 있다는 부담 한 덩이를 팔에 끌어안은 채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오래 전부터 기분이 우울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일을 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은 중요하다 믿었었는데, 이번 기회로 다시 확신하게 되었다. 사람은 일을 해야만 한다. 앞으로 인생에서 다음 할 일이 없는 채로 쉬는 일은 만들지 않을 생각이다.

두 번째, 이직할 때는 되도록 빨리 하자.

이번에 당황스러웠던 것 중 하나는 공백기가 길어지다보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이직의 난이도가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퇴사 직후에는 이력서를 넣었을 때 서류 탈락하는 경우가 0%길래 콧대가 높아져 회사를 골라가겠다는 자만심이 가득했다. 그런데 퇴사 3개월 차 부터 서류 탈락이 조금씩 생기더니 4개월 때 그 수가 꽤 많아져서 정신이 번쩍 들었고 그제서야 이직 준비에 온 집중을 했었다.

4개월 차부터 면접에 갔을 때 쉬는 기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물어보는 회사들이 조금씩 생겼었는데, 서류를 넣은 회사들이 실제로 내 공백기에 큰 비중을 두고 불합격을 시켜서 그 비율이 늘어났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직이 더 어렵게 체감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버지는 이걸 “말렸다”라고 표현하셨는데,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심적 부담이 커진 것도 있었고 그게 또 이직 활동에 부정적으로 작용했기에 기간이 더 길어졌다면 이 악순환을 끊어내기가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그래서 이직이든 무엇이든 진행이 필요한 일이라면 앞으로는 불필요한 공백 없이 단칼에 진행해야겠다.

세 번째, 취업은 운칠기삼이다.

이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앞서 표현한대로 “말려버리는” 바람에 내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자꾸 되돌아보고 가치절하 시키며 자존감을 깎는 일들이 많았다. 나름 자기객관화가 잘 된다고 믿는 편이었음에도 탈락을 여러번 반복하면서 ‘개발자로서 내가 그렇게 별로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었다.

내 기준에서 별로 일하고 싶지 않은 회사였음에도 취업사이트에 표시된 지원자 수가 200명 가까이 되는 것을 보며 개발자 취업 시장이 현재 정말 어렵다고 느꼈고 그 안에서 경쟁하는 것에 대한 부담도 꽤나 컸다. 시기를 잘 탄 덕분에 이전 이직 때는 탈락을 전혀 경험해본 적 없이 오히려 내가 회사를 선택해야만 했던 것에 비하면 상황이 180도 달라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직한 회사를 만나면서 이게 진짜 운의 영향이 크다고 느꼈다. 채용의 본질은 결국 회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고 그에 맞춰 회사가 줄 수 있는 가치가 지원자의 요구조건과 맞아 떨어져야 하는 것인데, 지금 회사와 내가 서로에게 필요로 하는 조건이 정말 딱 맞아 떨어졌다.

그 앞의 수많은 탈락들에서는 사실 지원조건이나 업무내용, 컬쳐핏이 회사와 나 사이에 정확히 맞지 않아도 어쨌든 취업을 해야하니 지원을 하고 면접을 보며 억지로 끼워맞추는 느낌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회사 지원 과정에서는 서로 원하는 바가 정말 잘 맞는다고 느껴졌고 그래서 진심으로 회사도 나를 좋게 봐주어 합격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기적처럼 잘 맞는 상대를 만나서 취업을 하게 되었는데, 돌아보니 결국 그 전까지는 내가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고 내 능력을 적절하게 발휘할 수 있는 회사를 만나는 운이 안 따랐을 뿐이었던 것이다.

따지고보면 남들은 100개, 200개 이상의 회사에 지원을 하고도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한데 나는 그 정도까지 하지 않았음에도 이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운이고, 연애 마냥 잘 맞는 회사를 만나는 것도 운이다. 그러니 혹여나 또 이직을 하게 된다면 기억하자, 능력을 키우는 건 갈 수 있는 회사의 풀을 넓혀주지만 그 풀이 작아도 서로 맞는 회사는 분명 존재하고 그런 회사를 만나는 것은 운에 달린 일이니 너무 스스로를 자책하지는 말자.

네 번째, 그럼에도 부족하다.

바로 위에 스스로를 너무 부족하게 바라보지는 말자고 했지만, 이번 휴식기 동안 나에게 진짜 부족한 영역을 보게 된 것도 있다.

개발자로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푸는 능력을 기르는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문제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보다 회사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이 훨씬 가치있고 복잡하기 때문에 별도 자기계발 보다도 회사 일을 잘 하는 것에 집중해왔다. 그런데 회사 생활을 하면서 배운 지식이나 스킬들에 너무 갇혀 있다 보니 범용적인 개발자로서는 성장에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서커스에서 한 가지 재주만 잘하는 원숭이였달까…

게다가 AI로 인해 개발 시장이 엄청나게 변했다는 것도 체감했다. 그래서 앞으로 중요해질 역량도 많이 바뀌어서 계속해서 환경에 적응해나가야 할 부분들도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질문도 든다. 과연 언젠가 내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을 날이 오기는 할까? 시니어가 된다는 것은 부족함이 없는 능력을 갖추기보다는 그냥 이런 부족함을 대하는 자세가 바뀌는 것은 아닐까? (아닐지도)

아무튼 4년차에 크게 위기감을 겪고 일종의 전환점이 되었다. 아니, 되어야 한다. 이게 전환점인지 아닌지는 이후의 내가 어떻게 바뀌느냐에 달려 있으니까.

감정적으로 롤러코스터를 많이 탔던 휴식기였지만 이제와서 디테일하게 쓰자니 벌써 까마득한 느낌이 든다. 면접 하나하나를 거칠 때마다 배우고 느끼는 것들도 많았었는데 이력서에 항상 블로그 주소를 포함 시켜 놓다보니 혹여나 면접관이 글을 읽을까 싶어 조심스러운 마음에 쓰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았다.

어쨌든 이직은 꽤나 성공적이었고 마음에 드는 회사에 나에게 맞는 포지션을 찾아 앞으로의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데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 같다. 이 얘기는 나중에 더 적어볼 기회가 있을 것 같고, 우선 당장은 회사에 잘 적응해보자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